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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순응해 흙과 나무로 지은, 제주 30평 단층 목구조 흙집
2005년 5월 26일 (목) 20:02:00 |   지면 발행 ( 2005년 5월호 - 전체 보기 )



건축주 지연배·차금연 부부는 무려 1년여의 공을 들여 남제주군 남원읍 태흥리 완만한 오름 능선 위에 30평 단층 목구조 흙집을 손수 앉혔다. 소박미가 물씬한 홑처마며 위의 절반은 박공이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인 팔작지붕 그리고 옹이가 박힌 굵고 거친 원목 기둥은 뒤의 솔숲과 조화를 이뤄 담박미를 더한다. 은은한 흙 냄새와 편백 향이 가득한 실내는 오량천장을 내어 대청마루의 조형미를 한껏 살렸다. 100퍼센트 흙과 나무만을 사용해 오랜 기간 품을 들여 완성한 이 집은 제주의 아름다운 속살에 아늑히 깃들었다.

제주도의 봄은 화려하다. 샛노란 유채와 화사한 왕벚, 섬들이 잠긴 옥빛 바다와 진녹색의 야자수…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찔한 풍광들이 봄 햇살 아래 넘실댄다. 하지만 이는 제주도가 지닌 아름다움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관광 명소를 조금만 벗어나면 섬 땅 제주의 소박하고 질박한 삶 풍경과 마주한다. 바닷가 낮게 엎드린 가옥과 가지런한 돌담, 마을 어귀에 빼곡한 바람막이 삼나무, 오름과 오름을 잇는 부드러운 능선 그리고 그 위에 봉긋한 무덤들… 혹자는 목가적 서정에 맘이 설렐 터이고, 혹자는 섬의 고단한 역사에 아득히 젖어들 게다. 관광지의 풍요로움을 좇는 이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그러나 한 번 뇌리에 담아두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제주의 진경(眞境)이다.

최근 이곳에 섬의 속 살결과 조화를 이룬 수수하고 담박한 집 한 채가 앉혀졌다. 건축주 지연배·차금연 부부가 무려 1년여의 공을 들여 손수 지은 남제주군 남원읍 태흥리의 30평 단층 목구조 흙집이다.

풍경 속 아늑히 깃든 집

이 집은 해안에서 내륙으로 치닫는 첫 번째 오름 능선에 짙푸른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바다를 굽어보는 정남향에 자리한다. 진입로 초입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솔숲에 옴팍 안긴 형상이다. 무기교의 소박미가 물씬한 홑처마 팔작지붕과 옹이가 박힌 굵고 거친 원목 기둥 그리고 통나무 단면이 드러난 외벽에서 이 집이 완성되기까지 들인 시간과 품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반듯한 장방형의 입면에는 그 흔한 덱도 놓여 있지 않고, 마당에는 울도 담도 쳐져 있지 않다. 어디에도 뽐내고 으스댄 흔적이 없다. 본디 그 자리인 듯 주변 풍경에 아늑히 스며들었다. 날렵하고 세련된 사기그릇보다는 투박한 질그릇을 연상시키는 집의 모양새에서 건축주 부부의 담백한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지연배·차금연 부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3년 전 정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부인 차금연 씨가 남편보다 6개월 먼저 이곳에 터를 잡았다. 남대문시장에서 일명 ‘또순이’로 불리며 20여 년간 의류 도매업을 건사해 온 그녀는 2002년 봄, 가족과 일밖에 모르고 내달렸던 삶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고 제주행을 택했다. 건설 현장에서 미장일을 하던 남편은 이직의 어려움을 들어 극구 반대했지만, 이미 살 집까지 구해 놓고 마음을 굳힌 아내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속 깊은 막내아들이 제주행에 기꺼이 동참했고, 남편 역시 6개월 후 제주도로 내려왔다. 아내는 제주행 결심을 하면서부터 손수 흙집을 짓겠다고 맘먹었다. 시장통에서 억척같이 살아내면서 혹사시킨 심신을 회복하자면 흙집만큼 좋은 약이 없을 듯싶었다.

“평생 흙내를 그리워하며 살았어요. 유년시절 뛰놀던 산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죠. 20대 초반에 첫아이를 낳았던 집이 바로 흙집인데 밤새 젖먹이에게 시달려도 아침이면 몸이 개운하고 가볍더군요. 그래서 세상살이에 심신이 피곤할 때마다 그 흙집을 생각했죠. 나이 들면 꼭 흙집에서 살아야겠다고 말이죠.”

100% 흙과 나무만 고집

부부는 2003년 초봄, 1년여의 발품을 판 끝에 남제주군 남원읍 태흥리에 위치한 임야 362평을 매입하고, 그해 4월 본격적인 집짓기에 들어갔다. 힘들고 더디더라도 100퍼센트 흙과 나무로 이뤄진 집을 짓기로 마음먹고 그간 틈틈이 책을 통해 공부해 둔 전통 방식을 좇아 찬찬히 일을 추진해 갔다. 기초공사는 간편한 콘크리트 줄기초 대신 터를 판 자리에 참숯과 천일염을 깔아 해충과 습기를 차단하고, 그 위에 자갈을 깔아 터를 다진 후 다시 높이 40센티미터로 자연석을 쌓아 기단을 올리는 옛 방식을 고집했다. 당시 소요된 자갈과 자연석만 무려 15톤 트럭 11대 분량에 달했다.

집의 뼈대를 이루는 목구조재는 제주산 편백(扁柏) 원목을 현장에서 일일이 다듬고 손질해 사용했다. 지붕은 서까래 위에 알매(짚을 썰어 넣어 반죽한 흙)를 7센티미터 두께로 두 번 올려 한식 토기와를 얹었다. 벽체는 편백 통나무를 30센티미터 길이로 토막을 낸 후 반죽한 제주 찰흙과 함께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부부는 안팎으로 집의 모양새가 갖춰지자 흙이 잘 마를 때까지 기다려 2004년 봄 드디어 새 집으로 이사했다. 공사를 시작한 지 꼬박 1년이 흐른 뒤였다.

“그냥 쉽게 갈 일이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핀잔을 수없이 들었죠. 하지만 흙집의 효능을 이미 알고 있는데 벽돌과 시멘트를 사용해 날림으로 짓고 싶지는 않았어요. 전문지식이 없어 구들도 못 놓고 여기저기 엉성한 구석도 많지만 흙과 나무만을 사용했다는 자부심 하나는 자랑할 만하죠. 장마철 비닐을 두르느라 밤잠 설쳤던 일, 흙을 만지느라 손이 퉁퉁 부었던 일, 쉽게 가자는 남편이랑 다퉜던 일… 집 안팎 구석구석에 추억이 서려 있죠. 정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 집이에요.”

땅과 하늘의 기운을 가득 담아

나무와 흙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해 수수하고 자연스럽게 연출하기는 집의 내부 또한 마찬가지다. 햇살을 충분히 끌어들이기 위해 남향인 집의 전면에 배치한 거실은 황토 모르타르로 내벽을 마감하고 통나무 단면을 그대로 노출시켜 실내에서도 은은한 흙내와 나무 향을 만끽할 수 있다. 여기에 바닥은 편백 원목으로 짠 우물마루를 깔고 오량천장을 내어 한옥 대청마루의 개방감과 청량감을 살려냈다.

거실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부부의 안방과 서재를, 우측에는 화장실과 옷방을 앉혔는데, 특이한 점은 화장실을 제외한 개인 공간의 천장이 모두 개방돼 있다는 것이다. 거실 천장과 각 실의 천장을 통으로 이은 이러한 구조는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집 안 어디서든 공유하고픈 차금연 씨의 의도가 빚어낸 결과다. 때문에 거실의 전면창과 각 실의 교창, 솔숲으로 통하는 후면의 문을 모두 개방하면 집 전체가 하나의 대청마루인 듯 청량한 기운이 집 안 곳곳에 충만하다. 별다른 가전의 힘을 빌지 않고 지난여름을 거뜬히 넘길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흙과 나무가 주는 토속적 정감에다 은은한 흙 향과 편백 향까지, 마치 삼림욕장에 온 듯 기분이 상쾌해요. 여름철 창호를 모두 개방해 두면 말 그대로 솔숲 정자 그늘 아래 앉은 듯 기분이 상쾌하죠. 얼마 전에는 집안 어른의 소개로 젊은 내외가 아토피를 앓는 아이를 데리고 한참을 머물다 갔는데 붓기와 가려움증이 거짓말처럼 나아서 돌아가는 걸 보고 내가 정말 좋은 집을 지었구나 싶었죠. 우리 가족만 누리기에는 정말 아까운 집이에요.”

함께 나누고픈 흙집의 효능

차금연 씨의 말마따나 혼자 누리기에 아까운 이 집은 한 달 전부터 새로운 주인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주위 사람들의 ‘집 좀 내놔라’는 성화에 못 이겨 일반인들을 상대로 민박을 경영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이들 부부는 이사할 요량으로 집 옆에다 11평 규모의 작은 흙집을 새로 짓고 있다.
새 집은 시일이 급한 관계로 바닥과 지붕만 흙으로 올리고, 벽체는 벽돌을 쌓아 황토 모르타르로 마감할 계획이다. 흙과 나무로 제대로 지은 집은 남에게 내주고 정작 본인들은 반쪽짜리 흙집에 들어앉는 셈이다.

“집을 완성한 후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을 보고 좋은 집이란 결코 혼자 소유하려 해서는 안 되는구나 싶었어요. 왜 본채를 내주냐며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왕이면 제대로 지은 흙집에다 사람들을 들여야죠. 그래야 집 지은 사람으로서 할 말이 있는 거고요. 낯선 이곳에 내려와서 무얼 해먹고 살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소일거리가 생겨 일거양득인 셈이죠.”

팔등신의 날렵한 집은 매운 손끝과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마음을 담고 정을 붙인 소박한 집은 자연에 순응하는 도리만 알면 누구나 지어낼 수 있다. 지천에 널려 있는 흙과 나무와 돌에다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진지한 마음과 몸에 배인 성실함이면 족히 가능한 일이다.

이들 부부는 건축미학을 뽐내는 집보다는 사람 사는 훈기가 느껴지는 집을 짓고 싶었을 게다. 이제 그 집을 완성했으니 사람살이의 정겨움을 한껏 누려볼 일이다. 이들 부부에겐 그것이 타인에게 집을 통째로 빌려주는 일이다. 田

송희정 기자 / 사진 조영옥 기자

■건축정보
·위 치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태흥리

·부 지 면 적 : 362평

·대 지 면 적 : 200평

·연 면 적 : 30평

·건 축 구 조 : 단층 목구조 흙집

·내·외벽마감재 : 황토 모르타르 + 통나무

·지 붕 재 : 개량형 한식 기와

·천 장 : 오량천장

·바 닥 재 : 거실- 우물마루, 방-황토 모르타르

·난 방 형 태 : 기름보일러

·식 수 공 급 : 수도

·시 공 기 간 : 2003년 4월 ∼ 2004년 3월

·건 축 비 : 평당 430만 원

■설계·시공 : 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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