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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 땅의 모양과 명당
2003년 9월 15일 (월) 17:34:00 |   지면 발행 ( 1999년 11월호 - 전체 보기 )

풍수지리 땅의 모양과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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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국에 따른 비교에서 동물형 다음으로 많은 것이 물질형이며 양택에서는 물질형 보다 인물형이 오히려 조금 많은 편이다. 물질형은 30백여개로 반달, 배, 등잔, 금소반, 구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인물형에는 신선, 옥녀, 장군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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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형 명당반달형(半月形)은 해와 더불어 달이 우주의 운행과 인간세상의 기본질서를 상징하듯 풍수지리에서 반달터를 길지로 여긴다. 반달터가 개인의 집터나 마을 자리뿐 아니라 도읍지로서 손꼽혔던 것도 같은 이치다. 백제 부여의 반월성이나 신라 경주의 반월성, 그리고 고구려 도읍지 평양의 반월성 등도 모두 반달이 온달이 되어가듯 국운이 날로 융성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있다. 신라 4대 탈해왕이 반달터에 집을 짓고 살았던 까닭으로 뒤에 왕이 되었다는 설화도 마찬가지다.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탈해가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 두 종을 거느리고 토함산에 올라 7일 동안 머물면서 서라벌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그중 한 곳에 초승달 형국의 지형이 있어 그곳이 가장 살만한 곳으로 판단됐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호공이 살고있어 탈해는 숯과 숫돌을 그의 짚 곁에 묻어놓고 송사를 통해 이 자리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경주의 산세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형산강(兄山江)에 의해 양분된다.

경주의 주산은 토함산이다. 이 산에서 빠져나온 가지가 서쪽으로 몸을 틀어 명활산(明活山)을 만들고 낭산(浪山)에 이르러 진산이 된다. 여기서 평지의 논밭을 지나 반월성(半月城)을 이룬다. 따라서 반월성이 경주의 중심혈이다.

안산은 선도산이고, 형산강은 경주의 허리를 감싼 듯 하다. 전체적인 형국을 보면 경주는 남쪽에서 올라온 붉은 연꽃이 서쪽을 향해 핀 백년의 형상으로 연화형(蓮花形)을 이룬다. 여기다 금오산이 병풍을 이룬 형국으로서 문인, 재사, 미인의 배출이 기약된다.어찌보면 경주는 산들이 하나같이 연꽃잎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모습이어서 불교와의 인연이 깊은지 모른다. 경주 반월성의 명당론과 함께 우리는 경주하면 최부잣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69년에 타계한 최 준(전 대구대학 이사장)씨 집안은 9대 진사 9대 만석꾼으로 경주 일대에서 소문난 가문이다. 이 집은 반월성의 명당 터를 차지하고 있는데, 최 준씨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숱한 자금을 공급했고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에는 육영사업에 힘을 쏟았다.

‘벼슬을 높게 하지 말고 백성들 속에 덕을 쌓을 것이며, 천석으로 빈객을 접대하고 천석으로 구휼에 힘쓰라’는 그의 가훈이 말하듯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참고로 반달형의 명당은 음택보다는 양택에서 좋으며, 만월로 발전할 소망이 있듯이 기운이 뻗어나간 후엔 보름달이 기울 듯 쇠퇴기가 오니, 그 이전에 터를 옮기는 것도 생각해 봄직한 일이리라.

거북형 명당 거북은 수명이 길고 물에서도 뭍에서도 살기 때문에 예로부터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또 ‘구지가(龜旨歌)’에 나타난 대로 신성한 군주의 출현을 바라는 사람들의 뜻을 하늘에 전하는 영물이었으며, 고구려 시조 주몽이 금와왕의 군사에 쫓겨 달아날 때 다리를 놓아 구해준 신의 사자이기도 하였다. 거북이 하늘의 뜻을 점치는 예조(豫鳥)의 동물로 여겨진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땅이름, 산이름, 바위이름에 구(龜)자가 붙은 곳이 많고 일상의 도구나 가구, 공예품 따위에 거북 무늬를 놓으며 명이 긴 사람에게 ‘귀령학수(龜齡鶴壽)’라는 글귀를 써 보내는 것도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특히 금거북은 하늘에 사는 영물로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해서 만물을 낳는다고 한다.

이 거북이가 진흙에 빠지면 오행에서 이르는 토생금이 되어 땅속의 기운을 더욱 힘차게 빨아들이므로 집자리로서 더 바랄 것이 없다. 지리법도 크게 말하면 음양과 오행의 기본원리이며 이 근본 원리는 하도(河圖)와 낙서(落書)에서 나온 것이다. 하도는 태호 복희씨 때에 용마가 하(河=물)에서 등에 지고 나온 그림이며 낙서는 하우씨 때에 신구(거북)가 등에 지고 나온 것이다. 복희씨는 하도를 보고 선천팔쾌를 그렸고 하우씨는 낙서의 이치로 산수를 다스렸으며 하도는 선천의 체요, 낙서는 후천의 용이된다. 고로 서로 각각 위치가 다르지만 이치는 하나로 통하며 지리법 뿐만 아니라 음양오행의 이치도 이를 근거로 삼았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비동에 있는 운조루는 1968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는데 이 집은 유이주가 집터를 닦을 때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와서 풍수지리에서 이르는 곰거북터라 일러온다. 근세에 전해진 도선의 유산록에 따르면 구만리(오미동 일대 이름)는 호남의 명승지로 이름이나 한때는 1백여 호의 이주자들이 몰려든 적이 있다.

오미동 일대는 크게 보아 세 개의 명당이 있다 한다. 그 첫번째는 금구몰니형으로 운조루가 차지했고 나머지 두개, 곧 금환낙지와 오보교취는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운조루는 소백산의 한줄기로 평사낙안(기러기가 모래밭에 내려앉은 모양으로 금환낙지와 같은 뜻임)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금구입수형(거북이 물에 드는 모습으로서 운조루는 혈자리에 해당한다)이다. 앞의 내당수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가고 외명당의 섬진강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내외수가 반대방향으로 흘러주었고, 오봉산이 안산을 만드니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용과 물이 장엄하여 가히 대부가 날 지세다. 청룡이 우람하니 백자천손 할 것이고 주위의 형국을 만드는 산이 아름답고 물이 넉넉해 문필(文筆 : 문관과 학자)이 간간이 배출될 것이고 궁색하지 않을 것이다.

운조루터는 우리 나라 풍수비결에 따르면 3대 길지의 하나로 꼽히며 운조루의 금거북터가 부엌사리라고 믿어 바닥을 쓸지 않고 오히려 이따금씩 흙으로 덮기까지 한다. 본디 집을 지을 때 부엌자리에 방을 앉힐 생각을 했으나 방에 불을 때면 거북이가 말라죽을 것이므로 안방을 오른쪽으로 옮기고 거북자리를 부엌으로 만들어 언제나 물기에 젖도록 했다 한다. 이 집터에는 현재 묻혀있는 거북이의 집터에서 파낸 거북(현재 잃어버림)이와 두 개의 거북이 실재했던 셈이다.

지네형 명당 지네는 다리가 가장 많은 동물의 하나로서 그 수는 최소 15쌍에서 최대 1백70쌍에 이르며 천룡(天龍)이라고도 부른다. 풍수지리에서 지네형의 터를 길지로 여기는 것은 지네의 다리처럼 자손이 번성하고 재화를 많이 모을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박공머리나 대문에 지네모양의 철판(지네칠)을 붙였던 것도 같은 이치이다. 민간에서는 지네를 수호신으로 섬기고 농사의 흉풍이나 인간의 생명과 질병을 다스리는 존재로도 믿었다.

전북 정읍군 산외면 오공리의 청하산은 그 모양이 지네를 닮았다 하여 인근에서는 지네산이라 부른다. 행정지명도 본디 지네를 가리키는 오공리(蜈蚣里)였다. 이 마을 김동수씨 집에는 장방형의 못이 있는데, 이처럼 기형을 이룬 것은 지네가 지렁이를 좋아하므로 못을 지렁이처럼 길게 파서 먹이를 삼게 해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온 마을이 숲에 가려질 정도로 나무를 심는 것은 지네는 습지에서 사는 동물인 까닭에 이를 숲으로 가려두어야 한다는 풍수적 관념 때문이었다. 충남 서산군 안면도 주민들은 이 섬이 지네를 닮았다 하여 기와집을 짓지 못하도록 막았는데 지붕에 지네가 깃들면 결국 기와가 흔들리게 되고 이에 따라 불행이 닥치리라 여긴 것이다.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의 마을 입구 왼쪽에 있는 산이 매봉이다. 산정상에 두 날개죽지를 치켜세운 듯한 바위가 틀림없이 매의 모습 그대로다. 매봉 앞에는 닭산이 엎드려 있다. 그 뒤로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 형상이 지네 모습이다. 닭과 지네는 상극이고, 매와 닭도 상극이다. 이 세 마리의 짐승이 서로 균형을 취하고 있다.

이 곳 지네산에 전의 이씨 문의공파의 창수·정란의 묘소들이 있다. 이창수의 묘는 지네의 목부분에 해당하고 그의 증손 정란이 묻힌 곳은 지네가 벌레를 삼키고 있는 형국에 혈을 잡고 있다. 숙종때 우의정을 역임한 이상진은 조선조 네 명의 명제상 중의 하나로 전의 이씨 문중을 빛낸 인물이다.

한편 전의 이씨 이도(李棹)의 선산에 얽힌 얘기로서 그의 조상 이도가 공주 강가에서 뱃사공을 하던 중 만난 스님이 잡아준 곳으로 공주대교 건너편 홍수통제소 옆이 이태자 선산 묘소다. 주산은 속리산에서 천안왕자상을 거쳐 차령고개를 넘어 남하해왔고, 앞의 안산과 조산은 마이산, 대둔산을 거쳐 북으로 올라온 계룡산 난맥으로 혈 앞의 금강물이 마를리 없으며 계룡산이 조례에 나온 문무백관처럼 시립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백호쪽이 좋아 장자보다는 자손들이 더 영화를 누리겠고 조산과 안산의 귀사(貴砂)들이 병풍처럼 혈을 감싸지 못하는 것이 흠이다. 전의 이씨는 조선조에 정승 5명, 대제학 1명, 청백리 6명을 배출했다. 논산 연무대 신병훈련소 또한 닭의 형국이어서 지네와는 앙숙이므로 지네가 완전한 형체를 갖추게 되면(선로복선화를 말함. 선로복선화는 완전한 지네의 발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풀이됨) 연무대에 재앙이 발생한다는 것이 풍수적인 필자의 견해이기도 하다.

■ 글·청운 김영운(풍수지리연구가 02-845-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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