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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설계 노트 4] 이 집은 잘못 지어졌어요!
2007년 6월 1일 (금) 09:09:00 |   지면 발행 ( 2007년 5월호 - 전체 보기 )



부부는 아이를 낳고 세월을 함께 보내면서 차츰 젊은 시절의 감성적 사랑을 잃어 가는 듯하다. 갈수록 다툼이 생기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서로에게 의식적으로 배려하려는 노력도 자연스럽게 따르기 마련이다. 가끔은 부부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남편의 경우 아내를 위해 집을 짓게 된다.

얼마 전 경상북도 모 도시에 집을 짓고서 준공검사를 신청했다. 현행 규정에 따라 그 지역의 건축사(설계자가 아닌)가 시장을 대신하여 준공검사를 나왔는데 이곳저곳 현장을 둘러보면서 실측하고 도면과 대조하는 등 꼼꼼히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다. 곁에 있던 건축주에게 이런저런 질문도 던졌는데… 준공검사 담당 건축사 왈,

"법적으로 하자는 없으므로 며칠 내에 준공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이 집이 잘못 지어졌어요. 첫째 방향이 약간 남서향인데, 이를 동남향으로 도로 쪽으로 돌려야 하며 풍수적으로 볼 때 어머니의 모태적 느낌이 강하도록 'ㄷ'자의 집으로 마당을 감쌌어야 하며, 건물의 디자인은 물론이거니와 출입구의 위치도 다른 쪽으로 돌렸어야 합니다. 아예 집을 헐고 다시 짓든가,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부지를 마련하면 제가 제대로 설계하여 지어 드리겠습니다."

필자가 알고 있는 건축주는 개성이 상당히 강하긴 해도 합리적이고 인내력 있는 분이지만 준공검사가 끝나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길,

"최 건축사님! 이럴 수가 있나요? 어제는 내 인내력의 한계를 테스트 받는 줄 알았답니다. 아니 자기 집도 아닌데 자기 업무만 보고 가면 될 일이지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만든 이 집에 대하여 저따위 교양 없는 평을 하고 갈 수 있나요?"

하면서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필자도 무척이나 화가 났지만,

"같은 업을 하고 있는 건축사로서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준공검사 잘 넘어 갔으니 이해하세요."

그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사람만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집을 지을 각각의 땅들도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른 성격을 가지고 다른 땅주인과 설계자를 만나 나름대로의 특성이 부여되고 탄생되는 것을 어찌도 그리 자신의 주관대로만 평할 수 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더군다나 오랜 기간의 기다림과 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행복한 꿈에 젖어 있는 분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말이 아니었는지……. 마치 결혼식장에서 당신들은 서로 궁합이 맞지 않으니 내가 다시 중매를 하면 어떨까 하는 주례사에 빗대어 말하면 너무 심한가? 어찌 되었건 이 개성 있는 집은 적어도 그 건축사에게는 '잘못 지어진 집'이 되고 말았다.

저마다 개성 있는 땅과 집

이 주택을 먼저 짓겠다고 한 것은 건축주인 남편이었다. 부인은 시내에 있는 아파트에 살면서 쇼핑, 레저 등을 가까운 곳에서 즐길 수 있다는 그 편의성에 익숙해 전원주택으로 이사하는 것에 대해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설계는 물론이고 조명기구 하나를 선정하고자 서울을 수도 없이 오르내리면서 힘든 과정을 모두 마치고 건축주가 입주하고 난 후 두 분을 만났다. 남편은 그간 힘든 과정과 아파트를 떠나오는 마음고생을 한 부인에게 주변의 운동시설이용권 선물과 몇 년을 타고 다니던 부인의 자동차도 교체해 주었고, 사업의 규모도 약간 축소하고 일찍 퇴근하여 부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도록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 집을 설계하는 과정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땅을 보고 건축주와 면담하고 곧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첫 번째 설계안을 만들어 건축주에게 보이면서 설명했는데, 그때 설계안을 보면서 건축주가 말하길,

"그렇게 오래도록 책을 보고 발품 팔고 나름대로의 설계하느라 밤을 밝히고 했는데 이렇게 시원스레 답을 찾아 주시니 괜히 사서 고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주 맘에 들어요. 그리고 대체로 우리 생각과 맞아떨어집니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땅을 보고 건축주가 말하는 생각들을 정리하여 도면으로 구체화시키면서 가능하면 건축사인 나의 개성을 많이 반영하지 않으려 애를 써야 하는 것들이었다. 가끔은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건축주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 땅과 건축주의 개성이 반영되는 집이 되기 때문이다.

이웃과의 관계성과 자연 풍광 고려

이 대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집의 뒤쪽(北)에서 대지의 좌측(東)으로 나 있는 마을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즉 집 뒤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조건과 건폐율이 20%밖에 되지 않아서 1층에 앉힐 수 있는 면적이 제한되어 평면 구성이 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대지의 우측(西)에는 폭 6m 정도의 조그만 계곡과 예쁜 소나무가 있는 언덕이 맞닿아 있고, 대지의 전면(南)으로 약 3∼4m 정도 낮게 너른 논이 펼쳐지며 그 논 너머 약 500m 끝에는 얕은 산들이 시선의 부드러움을 한층 배가시키는 풍광이 아주 뛰어난 곳이어서 그런 것들을 버리지 않고 집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연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다만, 대지의 좌측 도로와 대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뒷집과의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한 블로킹 존(Blocking-zone)이나 건축물의 매스가 필요하다는, 그리고 그러한 매스나 블로킹 존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중정中庭은 아마도 건축주에게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지 조건에 따라 2개 매스로 분리

대지 조건 분석에 의하여 건물을 크게 2개의 매스로 만들고 이 중 작은 매스는 도로를 타고 길게 흐르게 하고 큰 매스는 뒷집과의 경계선에 동서로 배치하여 주 기능 공간(거실, 식당, 주방 등)을 배치하기로 하였다.

작은 매스의 1층에는 주인 침실과 그에 따른 서비스 공간을 두고, 작은 매스와 큰 매스의 연결 부분에 현관과 복도를 두어 자칫 동네와 이 집이 단절될 수 있는 점을 보완하고자 시각적으로 연결이 되도록 큰 창을 두기로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건축주와 설계를 진행 중 창문의 크기가 작아졌고(보안 문제로) 당연히 시각적 연결성은 조금 떨어지게 되었다.

설계 목표 다이어그램에서와 같이 주 기능 공간(분홍색)은 이 집의 마당과 덱(Deck) 그리고 남측의 좋은 조망과 빛을 향하여 외부 쪽으로 드리고 주 기능에 따른 서비스 공간(녹색)을 두어 완충 기능을 담당하도록 했다. 또한 마을 도로와 약간 등진 형태의 건축물임을 감안해 출입구와 도로 쪽으로 모던한 형태의 화단이나 조경, 담, 대문 및 주차장의 철골보 등으로 완충적 기능을 부여하여 마을의 일원임을 강조하면 될 듯했다.

덱에는 한 그루의 소나무, 천창에는 남녘의 구름

외부는 전체적으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하고 지붕은 천연슬레이트 기와를 사용하기로 건축주와 협의하다 보니 흔한 흰색 사이딩의 전원주택이 아니라 친근감이 있고 편안한 느낌의 모던함에 가까운 외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평면은 이미 완성된 설계 목표에 의하여 각 실의 크기만 정하면 되는 일이었고, 1층 현관에서 거실을 통하여 주방/식당으로 가야 하고 또 거실의 우측 벽을 통하여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거실의 동선이 조금 복잡한 것이 아쉬웠지만 전체적 기능을 위하여 이 정도는 건축주도 양보했다.

주방에서 식당을 통하여 바로 외부의 덱으로 나가면 그 끝에 예쁜 소나무 한 그루를 심기로 하였고 그 소나무 아래에 작은 벤치를 두고 이곳과 거실은 일반적 덱의 형식이 아닌 징검다리 역할의 브리지 형 덱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또 주방에서 머리를 들면 식당의 천창을 통하여 남녘의 구름들이 흘러가는 것을 언제나 볼 수 있도록 했다.

설계가 완성되고 집이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마지막 마감공사 시 건축주 내외분과 조명기구를 선정하러 꽤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야 했는데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준공 후 건축주의 부인이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는 아파트 생활을 버리고 전원주택으로 오는 게 싫었지만 남편이 오래도록 숙원해 온 터라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집을 다 짓고 입주하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 '이렇게 예쁜 집을 지어 살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지요."

필자는 그 말을 이렇게 알아들었다.

"건축사가 설계를 잘해 준 덕분에 이 행복을 누립니다, 감사합니다." 아∼ 생각의 자유로움이란! 집을 설계할 때는 건축주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지만 일이 끝나고 나서는 오로지 나의 개성대로 해석할 수 있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田

최길찬<건축사·시공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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