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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찾아서] 화서학파의 산실 양평 이항로李恒老 생가
2007년 11월 29일 (목) 01:33:00 |   지면 발행 ( 2007년 11월호 - 전체 보기 )

이항로 선생 고택은 선생의 아버지 대에 지은 집으로 200여 년이 됐으며, 선생이 태어나서 일생을 보낸 곳으로 최익현·홍재학 등 많은 선비들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던 곳이다. 이항로 선생은 순종 8년(1808)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포기하고 학문과 제자 양성에만 전념했다. 고종 3년(1866)에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에게 전쟁으로 맞설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는 주리철학을 재건한 사람 중의 하나로 조선 말기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했다. 건물은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던 사랑채와 대문간에 붙어 있는 집으로 주로 하인들이 머물던 행랑채가 있다. 또한 집의 안쪽에 있으며 ㄱ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안채가 있어서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공간 구성을 따르고 있다.

이항로 선생 생가(경기도 유형문화재 105호)는 용문산에서 발원해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벽계천 중간(노문리 벽계마을)에 위치한다. 앞으로는 벽계천을 바라보고 남향을 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계곡이지만 그리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안온하면서 안정된 느낌이 들며 풍광이 수려하다. 1945년대만 하더라도 이 벽계마을은 수백 년 된 느티나무들이 마을을 울타리처럼 둘러싸서 풍광이 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광복 후 지주들이 나무를 베어내 팔아서 현재는 오동단에 한 그루만 남아 있다. 당시 나무들을 그대로 보존했더라면 이항로 선생 생가 주변 풍광은 지금보다는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항로 선생 생가는 일제시대 가평군수로 재직하던 후손이 매도한 것을 1980년 문화재 지정 후 군郡이 다시 매입해 주변 정비사업을 했기에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고택 앞쪽 좌측에는 화서기념관이, 우측에는 강학을 위한 벽계강당이 새로 들어섰다. 고택으로 오르는 길도 새로 계단식 단을 쌓아 옛집으로 가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행랑채와 사랑채도 언제 복원했는지 군청에서조차 알지 못했다. 필자가 1999년 답사할 때도 있었으니 최소한 그 이전일 것이다. 안채 또한 아쉽게도 작년에 대부분의 부재를 다시 교체했기에 본연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사랑채와 안채를 병렬로 배치해

이항로 선생 생가는 도로에서 바라보면 꽤 높은 곳에 자리한다. 집을 우러러보게 만든 구조로 자연스럽게 위압감을 발산한다. 집터를 잡을 때 은연중 이 점을 고려하지 않았나 싶다. 이씨 가문은 이항로 선생의 고조부 때 이곳에 입향入鄕했고, 이 집은 선생의 부친이 지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집을 지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쯤이다.

집의 전체적인 배치는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관계도 대개 사랑채가 전면에, 안채가 뒷면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안채와 사랑채를 병렬로 배치했다. 이러한 예는 강화도 철종 외가에서도 보이지만 드문 경우다. 대지 조건에 영향을 받은 탓으로 경사 급한 곳에 집터를 잡다 보니 사랑채를 앞에 배치할 만한 대지를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집은 전체적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진 ㅁ자 구조로 중앙에 대문과 중문이 위치하고 대문과 중문을 중심으로 좌측이 안채, 그 우측이 사랑채다. 사랑채는 ㄷ자 형태로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구조다. 또한 사랑채에는 다른 집보다 방이 많다. 전체 9칸 반 규모로 1칸 반 대청과 2칸 부엌을 제외하면 모두 방이 차지한다. 방이 많은 것은 사랑채 손님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사랑채에 방이 많은 이유?

안채 우측에 1칸 반 규모의 마루방이 있는데 대청이 있음에도 안채에 이러한 마루를 놓은 것이 특이하다. 또한 건넌방에는 노산정사蘆山精舍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추론하면 집 지을 때 없던 마루방을 후대에 덧단 것으로 보인다. 집 지을 때 안채 한 동만 지어 이를 사랑채와 같이 쓰다가 후에 이항로 선생이 사랑채를 증축했을 것이다. 선생의 문하에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사랑채에 방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채는 역 ㄱ자 형태로 대청에 전퇴를 두었다. 바깥 툇마루의 도리까지 고려하면 4량 구조지만 몸채는 삼량구조인데 이처럼 반가班家에서 안채를 삼량구조로 한 예는 극히 드물다. 집 지을 당시 경제 사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소박하다. 좌측에 안방이, 그 아래쪽으로 부엌 두 칸이 있다. 안방은 대청 쪽의 윗방과 아래쪽의 한 칸 반의 방으로 나뉜다. 안방의 규모는 두 칸 반으로 그리 작은 편이 아니다.

대청은 두 칸 규모로 그리 크지 않은데 한쪽 칸에는 벽장을 설치했다. 벽장은 상하로 구분되는데 집에 사당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위패를 모셨을 것이다. 건넌방은 한 칸 반의 규모이고 그 앞에는 노산정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 지을 당시 건넌방이 사랑채의 역할을 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항로 선생 생가 우측 언덕에는 경기도 기념물 43호로 지정된 노산사蘆山祠가 있다. 이항로 선생 사후에 그의 제자인 최익현, 유봉재, 유인석 등이 계를 조직해 사우를 짓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방 후에야 일부 뜻 있는 사람들이 사재를 모아 1954년 노산사를 창건한 것이다. 이곳에는 이항로 선생이 가장 존경했던 주자와 송시열 그리고 선생의 영정을 함께 봉안하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

되살아나는 이항로 선생의 자주정신

일반적으로 이항로 선생은 구한말 시대를 읽지 못한 보수주의자로 인식돼 왔다. 쇄국정책에 대한 선생의 지지는 왕조시대 마지막 저항으로 받아들여졌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사상으로 치부 받았다. 그러나 이항로 선생의 일대기를 살펴보면서 그 사상을 너무 편협하게 해석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을사보호조약에 즈음한 무장봉기의 대부분을 화서학파가 주도했고 한일합방 후에는 그의 많은 제자가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최익현, 유인석, 박장호, 조맹선으로 이들은 이항로 선생의 직계 제자이거나 화서학파였다. 또한 상해임시정부를 이끌던 박은식과 김구도 화서학파다.

이항로 선생의 사상이 소중화小中華를 표방한 구시대적 사상에 기반한다고 치더라도 선생이 남긴 자주 자립 사상이 없었다면 우리의 독립운동은 지금보다 훨씬 미약했을지 모른다. 지금 대외적으로 자주독립국가를 표방하지만 우리의 글조차 버려야 할 쓰레기로 인식하는 현 상황은 정신적으로 식민국가나 다름없다. 자신을 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를 고양하고자 했던 이항로 선생의 자주 정신은 분명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田

최성호<산솔도시건축연구소 소장/전주대 겸임 교수>·사진 홍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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