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回想- 여기에 전원생활을 시작한 동기動機가 되어 버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잠시 피력披瀝하고자 한다. 서울 이외의 곳에서는 별로 생활해 보지 못한 나는, 항상 어릴 적 피난시절을 보냈던 경상도의 조그마한 소촌小村을 그리워하곤 했다. 아직은 어둑어둑 먼동이 채 트기도 전, ‘꼬끼-오, 꼬끼오’ 한껏 목청을 돋워 외쳐 대는 장닭의 울음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홰치는 소리. 해 뜨기 직전 자욱하게 피어오르던 평원의 물안개. ‘삐거덕, 삐거덕’ 똥장군을 싣고 가는 소달구지〔牛車〕. 그 뒤에는 어김없이 졸랑졸랑 쫓아오며 ‘음매, 으음매―’ 어미를 목 타게 부르던 송아지의 앙증맞은 모습이 있었다. 삼베 고쟁이를 입은 아저씨는, 연신 장죽長竹을 빨아 하얀 연기를 내 뿜으며 ‘이랴-, 이랴’를 연발한다. 5일장이라도 열리는 날 아침이면 소달구지에는 어김없이 땔나무가 바리바리 높다랗게 실리고, 해질 녘 돌아오는 길, 장터 주막酒幕에서 막걸리 한 사발에 흥이 난 아저씨의 콧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소의 입을 가린 망網(아직도 정확히 이름을 모른다)을 보고 “엄마, 소도 마스크 써?” 하며 묻는 말로 시골 여러 어른의 웃음을 샀던 일. 논두렁, 밭두렁에서 얻어먹는 새참의 그 꿀맛! 그게 강보리밥이었는데 그래도 꿀맛이었다. 물장구치며 놀던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도 깊고 넓게만 보이던 시냇물 그리고 삐죽삐죽한 돌들이 머리를 내민 모래사장은 위험천만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완벽한 놀이터요, 체육관이었다. 어쩌다 눈 먼 피라미나 모래무지라도 한 마리 잡으면, 모래를 쌓아 물을 넣어 집을 만들어 주고 그 모래사장에 엎드려 신기한 듯 들여다보던 일.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 집 다오.” 한 주먹을 모래에 묻고 다른 손으로 그 모래를 두드리며 우리는 간절히 새 집을 원했지. 새 집이 거의 없던 시절,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그렇게 소원했을까. 누런 갱지를 실로 꿰어 묶어 만든 노트 한 권에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네 과목의 책. 양철필통에는 달랑 연필 두 자루, 지우개 하나. 그것으로 누런 갱지의 글씨를 지우면 여지없이 찢어지고 마는…. 책과 공책을 보자기로 둘둘 말아 대각선으로 등에 질끈 메고 학교로 뛰고, 또 집으로 뛰던 모습들. 학교는 미군부대가 점령(?)하고 우린 농잠학교(지금은 대학교)의 커다란 나무 밑을 빌려서 수업을 받았다. 교실이 부족해 저학년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각할까 두려워 뛰어오는 통에 억지로 깎아 온 연필심은 다 부러지고 손톱으로 연필심을 억지로 꺼내어 쓰던 일. (그 때 연필나무는 그렇게 물렁했다.) 큰 느티나무 밑에서 매미소리를 벗삼아 수업 받다가 소나기라도 내릴라치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가난하디 가난했던 그 시절. 그 비를 ‘조르륵’ 맞으면서도 무어가 그리 우스웠고 좋았던지! 논두렁 밭두렁을 한참 뛰다 보면 물에 빠진 생쥐와 다를 게 없어도 ‘키득 키드득-’거리며 비행기 폼을 잡은 채 장난치며 집으로 돌아오던 생각이 지금도 새록새록 난다. 냇가의 검은 찰흙을 빚어 만든 비행기, 대포, 탱크로 (전시여서 소재도 온통 그런 것밖에 없었나 보다.) 여름방학 공작숙제를 대신해 가던 그 시절. 거머리에 뜯겨가며 우렁이를 잡던 그 논바닥 누런 미꾸라지가 많기도 했지만 우리 어린 손에는 잡히질 않았다. 작고 나지막한 토담집 그러나 그 벽은 엄청나게 두꺼웠다. (족히 30cm는 되었을 게다.) 그 두꺼운 담벼락에는 빛도 억지로 들어 올 것 같은 손바닥만한 창문이 있었고 거기에 비해 두꺼운 벽은 훌륭한 창문틀을 만들어 주었고 그곳은 또 없어서는 안 될 조그마한 선반이 되었다. 거기에는 희미한 호롱이 자리하고 있었고 또 잃어버리기 쉬운 중요한 것들의 보관창고 역할을 했다. 초가지붕은 우리 손에도 닿을 듯 말 듯 낮았고 허리를 접어야 들어갈 정도로 방문도 낮고 좁았다. 너른 정지에는 육중한 무쇠 가마솥이 걸렸고 아궁이에는 연신 삭정이가 들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환하게 탄다. 나지막한 초가집의 굵고 짧은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녁 밥 짓는 연기 그리고 그 잊을 수 없는 메케한 냄새들. 호롱불 밑에서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양철책받침을 받치고 숙제하던 그 때. 아! 그 때가 시도 때도 없이 그리워진다. 땔감이 모자라던 시절, 큰 나무는 다 베어가고 없는 벌거숭이산에 봄의 전령傳令인 진달래가 온 산을 뒤덮어 장관을 이루던 모습이며 그 꽃을 따먹으며 간식을 대신하던 일. 산모롱이를 돌아오노라면 고즈넉하게 고개 숙인 할미꽃이 꼭 우리 외할머니의 모습처럼 애처롭게 보이던 그 시절. 생각해 보면 그 여름 내리쬐던 햇볕은 지금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무공해 햇볕이 아니런가? 온 들판이 황금빛으로 변하는 결실의 계절이면 마당에는 큰 멍석이 깔리고 홀태(재래식 탈곡기)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알곡을 토해 낸다. 이 때쯤이면 빼놓지 않고 나타나는 풍물패거리들 꽹과리를 치며 이 동네 저 동네를 신나게 다니던 이상異狀한 옷차림의 풍물패를 따라 다니던 동네 꼬마들 거기에는 물론, 나도 있었지. 초가집 지붕 위에 달덩이처럼 매달린 푸르스름한 박 아주 큰 박이었다. 연극 속의 흥부네 박처럼 삐죽 튀어나온 짚단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 그 처마 밑에서 손 시린 줄 모르고 그 고드름을 누가 빨리 녹이나 시합하던 철부지 시절. 논바닥에서 판자에 굵은 철사를 매어 타던 썰매 아마 그것도 분명 구호물자救護物資 상자였을 게다. 외할머니가 만들어 준 방패연防牌鳶 그 연줄에 풀을 먹여 친구들의 연줄을 다 끊어 버리고 신나하던 일. 옴두꺼비 같이 튼 손등에 멘소레담(멘소리다마)을 발라 주던 어머니의 손길이 아직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면 뭘 하나, 그 손으로 또 팽이를 치고 딱지를 친다. 너덜너덜 떨어진 옷소매를 길게 해서 바람을 일으키며. 어른들은 논두렁 밭두렁에 불을 놓고 우리들은 미군들이 먹고 버린 깡통을 주어 바닥에 못 구멍을 촘촘히 내고 긴 철사 줄로 매달아 거기에 불씨를 받아 넣고 빙빙 돌리면 불은 ‘쏴아,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밤하늘에 불원〔火圓〕을 그린다. 커서야 알았지만 이것이 쥐불놀이라는 거란다. 정월 첫 쥐날에 쥐들을 쫓기 위해 시작했다는 쥐불놀이. 그것도 지금은 쥐불은 놓지만 쥐불놀이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시골에서는 간혹 폭죽으로 대신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어른들 몰래 살짝살짝 문을 빠져나갈라치면 쥐방울 만한 쇠종은 왜, 그리 큰소리를 내는지! 설 얼은 논바닥 얼음에 빠져 덜덜 떨면서 화톳불을 피워 말리던 모습들. 그리곤 엄마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고 옷을 몽땅 압수 당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을 서던 일. 엄마는 화롯불에 그 옷들을 말리느라 애를 많이도 쓰셨지. 갈아입을 옷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마솥에 펄펄 끓인 물로 억지 목욕하던 시절. 철썩! 볼기를 맞던 기억도 난다. 아마 목욕도 추석과 구정 때뿐이던 것 같다. 눈도 많이도 오던 그 해 겨울 우물 덮개 위에 쌓인 눈의 두께를 재어 보려고 외할머니의 바느질자를 우물에 빠트려 혼쭐나던 일. 그러나 화롯불에 감자며 고구마가 익어가고 생밤이 ‘툭툭’ 소리를 내며 속살을 드러낸다. 오화당 하나 주고 억지로 빌린 낫으로 난생 처음 서툰 낫질을 하려다 손가락을 뭉청 베어 울면서 그 먼 길을 돌아오던 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하던 학교운동회. 꼴찌를 해도 주던 한 권의 공책이 왜 그리 좋던지! 학교 마당에 나 뒹구는 포플러 나뭇잎을 모아 태우노라면 펄쩍펄쩍 뜨거운 불로 튀어드는 개구리 한 마리. 설구워진 개구리 뒷다리를 억지로 나에게 먹이던 일. 서울 놈이라고 그런 놀림도 당했다. 서울로 아버지를 만나러 간 엄마를 누나의 손에 매달려 조그만 기차역까지 가서 손가락 점을 치면서 기다리던 일. 그 조그만 기차역이 보고 싶다. 보리죽, 보리개떡도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 그리울라치면 내가 겪었던 3년의 시골 모습들이 순서도 없이 토막 쳐 머리를 스쳐가고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지금도 그곳에서 살았었다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촌무지렁이가 되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보고서에도 “인류는 부유해졌지만 행복은 덜 느낀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욕심이 적었다면 그만큼 행복으로 가는 길도 가까웠을 텐데……. 그 욕심은 아는 것과 정비례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밑도끝도없는 생각을 많이도 해 왔었다. 그리고 언젠가 어른이 되고, 또 내가 서울을 떠나 살 수 있을 때가 되면 훌훌 서울의 찌든 때를 떨어버리고 훌쩍 떠나리라 마음먹으면서 어느새 어른을 맞았고 또 이젠 서울을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을 때, 과연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곳이 피난시절 그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아직도 너무 멀리 있었고, 그리고 그 옛날 소중했던 나의 추억은 어느 동산 뒤로 숨었는지 자취도 없이 사라진 대신에, 괴물 같은 거대한 도시가 되어 나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