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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의식주를 바꾼 종교의 힘
2004년 8월 25일 (수) 11:24:00 |   지면 발행 ( 2004년 8월호 - 전체 보기 )

사람의 사고를 좌우하는 것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다. 19세기말 이후 종교의 의미가 퇴색하면서 종교라는 단어보다는 ‘이데올로기(이념)’가 사고를 지배하는 것으로 대두했지만,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넓은 관점에서 보면 종교하고 별로 다를 게 없다. 모든 민족 또는 국가에는 미신(迷信)이건 종교이건 간에 무엇인가 의지하고 믿는 대상이 있었다. 그만큼 역사에서 종교의 영향은 아주 큰 것이어서 의식주 모든 부분에 나타났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는 고려청자이고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는 백자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두 도자기를 보면 완전히 다른 미감을 보이고 있다. 고려청자는 매우 화려하면서도 정치(情致)한 미를 자랑하고, 조선백자는 투박하지만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같은 차이는 도자기가 만들어진 사고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이 지배하는 미감
고려시대는 귀족사회의 화려함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그러한 고려시대의 특징은 고려불화, 특히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하고 달리 조선시대는 매우 검박(儉薄)함을 존중하는 시대였다. 조선 사회에서 화려함은 지양해야 할 덕목이었다. 따라서 조선의 선비들은 순백색의 백자를 선호했던 것이다.

같은 백자라고 해도 중국의 백자와 조선의 백자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의 청화백자를 보면 백자라도 화려하고 정치한 모습이지만 조선의 백자는 그렇지 않다. 그런 것은 바로 생각의 차이에서 나온다. 수더분한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정치한 것은 오히려 부담이 된다. 이처럼 어떠한 생각을 갖는가에 따라 미감까지도 지배를 받는 것이 사람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더분하면서도 투박한 현대그룹의 사옥과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삼성그룹의 사옥을 비교해 보면 두 창업주의 가치관, 기업관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변소에서 화장실로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화장실과 처가는 멀면 멀수록 좋다’고 했다. 그러나 요사이는 ‘화장실과 처가는 가까울수록 좋다’고 한다. 그간 우리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화장실 문제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변한 것이고, 처가의 멀고 가까운 문제는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 그에 따른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때문이다.

우선 변소의 변화를 이야기해 보자. 재래식 변소를 개선하여 수세식 변기를 설치하면서, 변소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변소를 더럽고 냄새가 나는 곳으로 인식해 되도록 집에서 멀리 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과거의 변소는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설치했다. 그러나 구한말에 서양식 건물을 도입하고 일제 강점기(强占期)에 일본식 건물이 지어지면서 변소가 실내로 들어오는 것에 익숙해졌다.

설비의 발달로 수세식 변소가 도입되면서 변소에 대한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수세식 변소가, 변소는 냄새나고 더러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씻어 주면서 변소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화장실’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인식 개선에 일조를 하면서 집안으로 변소가 들어오는 것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변소’라는 이름 대신 ‘화장실’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자리 잡으면서, 과거의 냄새나고 파리가 들끓는 곳에서 우아하게 몸단장을 하는 곳으로 변신한 것이다.

생각의 변화는 화장실에 대한 관념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나갔다. 이제 화장실은 생리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충전(充電)을 위한 장소로 인식하게 됐다. 따라서 화장실을 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만들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개인의 집에서뿐만 아니라 기업, 최근에는 고속도로 화장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삼성그룹에서는 화장실을 ‘재창조의 장소’로 인식해 최고급의 시설로 개조하기도 했다.

생각이 삶의 방식을 결정지어
화장실 문제가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바뀐 것이라고 한다면, 처가하고의 문제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발생된 현상이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사회 활동이 늘어났다. 이런 변화는 필연적으로 육아에 관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관습상 시부모가 아이들을 키워 주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그렇다고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으니 결국 친정에 맡기게 된다. 딸을 시집보낸 죄를 보상해 주겠다는 친정어머니의 모성애가 더해져 새로운 사회 풍토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변화는 우리네 생활을 달라지게 한다. 예전 같으면 결혼해서 시부모님하고 같이 살거나 자신의 직장 가까운 곳에 집을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애를 낳을 때가 다가오면 처가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시대 전기 또는 고려시대에 가까운 삶의 방식이다. 최근 들어 홀로 거주하는 원룸을 많이 짓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유학이나 직장 때문에 다른 지방으로 나가지 않는 한, 결혼해서 분가하기 전까지는 부모하고 함께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려고 일찍 독립해서 사는 것을 원한다. 한 사람이 거주하는 소규모의 주거 공간을 많이 짓는 요즘의 추세도 그러한 사고 변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따라 삶의 방식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삶을 담는 주거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의식주를 바꾼 종교의 힘
사람의 사고를 좌우하는 것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다. 19세기말 이후 종교의 의미가 퇴색하면서 종교라는 단어보다는 ‘이데올로기(이념)’가 사고를 지배하는 것으로 대두했지만,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넓은 관점에서 보면 종교하고 별로 다를 게 없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교라는 개념보다는 자신이 믿는 이념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유교도 종교라기보다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어쨌든 19세기까지 종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가장 대표적인 사고 체계였다. 모든 민족 또는 국가에는 미신(迷信)이건 종교이건 간에 무엇인가 의지하고 믿는 대상이 있었다. 그만큼 역사에서 종교의 영향은 아주 큰 것이어서 의식주 모든 부분에 나타났다. 조선조 선비들이 많이 입었던 심의(深衣)나 유건(儒巾)도 유교하고 함께 전파된 일종의 예복이다.

종교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문화재 관련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물 이상으로 지정된 문화재 가운데서 60퍼센트 정도가 불교 문화재이고, 그밖의 문화재도 유교하고 관련 있는 것이 많다. 그리고 세계의 많은 문화유산 가운데 대부분이 종교와 관계돼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종교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종교관은 곧 인생관이다
사람이 종교를 믿게 되면 종교의 모든 것을 자신의 행동 원칙으로 삼는다. 그 원칙의 기본은 종교의 경전에 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반야심경般若心經》 《화엄경華嚴經》 《금강경金剛經》 《법화경法華經》 등을 독송(讀誦)하며 그 가르침을 생활의 근본으로 삼는다. 유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읽으며 그 내용을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성경을 읽으며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는다.

최근에는 서구 세계에서 종교의 힘이 미약해지고 있다. 특히 서구 사상을 지배해 왔던 기독교의 쇠퇴(衰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의 발전으로 신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이 과거하고 같지 않다는 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요즘의 서구에서는 동양의 종교 특히 불교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불교가 기독교와 같은 의타적인 종교가 아닌 자신에 대한 성찰(省察)에서 비롯한 종교라는 특징 때문에 기독교에 만족하지 못하는 지식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다른 나라의 불교보다는 미미하지만 한국의 불교도 미국이나 유럽에 진출해 포교(布敎) 활동에 열심이다. 이렇게 믿는 종교가 바뀌면서 서구에는 그로 인한 많은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이미 우리의 불교도 포교를 위해 미국에 절을 짓고 있다. 만일 한국의 불교가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다면 서구의 마을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던 교회나 성당 대신 한국의 절이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종교의 영향력은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력하다.

믿음의 차이는 곧 인생관의 차이로 나타난다.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기독교도들이 선교에 열심인 것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로 나오는 성경 구절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유교는 질서의 구축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상하 간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예(禮)의 비중이 높다. 예를 지키기 위해서 유교는 절차를 중요시하고 그에 대한 방법을 기술한 책을 높이 평가한다. 《예기禮記》와 《주자가례》가 그 대표적인 저술이다. 그러한 책은 유교를 국교로 정한 조선의 법률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보면 그 영향을 쉽게 알 수 있다.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는 종교 시설
종교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건축물은 종교 시설이다. 종교 시설은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종교적 신념이 구체화되는 시설이기 때문에 종교에 따른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종교 시설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첫 번째로 불교가 가져온 변화를 살펴보자. 불교의 국교화는 이전의 샤머니즘을 종교로 받아들여 유지해 온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의 종교였던 샤머니즘 또는 토착 신앙의 건물과 불교의 건물은 전혀 다른 형태였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해져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있는 탑도,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진신사리를 가지고 들어온 643년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 없던 건축물이다.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고 불전과 탑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한반도의 도시 구조는 이전하고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원종흥법·염촉멸신原種興法·厭觸滅身〉 조에는 경주를 묘사하면서 ‘절이 별처럼 많았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섰다(寺寺星張 塔塔雁行)고 표현했다. 불교가 공인되기 전의 경주하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아무리 불교가 국교로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문화의 고유한 성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외래문화는 토착 문화와 갈등을 겪으면서, 일부는 변형되거나 토착 문화를 수용하면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렇게 변형된 예가 현재 절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등이다. 이들 건물은 불교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토착 신앙이 불교 안으로 들어와 융화된 흔적이다.

근대에 들어 일어난 불교정화운동 가운데는 본래의 불교하고 관계없는 산신각 등을 없애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운동이 결국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은 그만큼 토착 신앙의 생명력이 끈질기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신각 등 토착 신앙의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해도, 불교가 전래된 뒤에 삼국시대의 삶은 그 이전하고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종교 건물은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유산인 불국사를 보면, 불국사 자체가 현세에 불국토(佛國土)를 구현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국사의 대웅전 영역은 《법화경》의 세계를 현재화하려는 열망의 표현이다. 《법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의 내용을 보면 “내 이제 사바세계의 석가모니불 계신 곳에 가서 석가모니불과 다보여래의 보배탑에 공양하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사바세계는 곧 청정하게 변하니…….” 라고 써 있다.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곧 불국토가 된다는 내용을 보여준다. 불국사는 현세의 불국토화를 위해 지은 공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모든 종교 건물은 종교적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불교가 들어온 이래로 조선이 건국하기까지 1000여 년 동안 수많은 건물이 불교의 세계관에서 지어졌다.

불교적 세계관은 유교가 도입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유교를 바탕으로 한 이상 사회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시도된다. 조선왕조는 불교의 세력을 억누르고 유교의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도성 안에 있던 절을 밖으로 추방하고 유교의 성현을 모시는 대성전을 전국에 세우기 시작한다. 또한 개인에게는 가묘의 건립을 의무화하고 사대부의 제사를 법으로 정한다. 그 같은 변화의 결과로 도성은 과거하고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불교 건물이 도성 밖으로 쫓겨남으로써 활기찬 모습은 사라지고 적막(寂寞)한 도시로 변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거리 모습은 나중에 기독교가 들어옴으로써 다시 한 번 일대 변화를 맞이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져온 변화의 첫 번째는 교회라는 서구풍 건축물의 신축이다. 과거의 건물하고 전혀 다른 교회는 우리네 도시 색깔을 바꿔 놓았다. 성공회 강화도성당(사적 제424호)처럼 우리의 건축에 서양의 종교를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물에는 서양 건축양식을 그대로 도입했다.

명동성당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건물은 그간 수직적 요소를 찾아 볼 수 없었던 우리의 건축 환경에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구한말에 찍은 명동성당 주변의 사진을 보면 교회 건물이 얼마나 이질적이었는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田

■ 글 최성호 <산솔도시·건축대표>

∴ 글쓴이 최성호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서 ‘산솔도시·건축’을 운영 중입니다. 주요 건축작품으로는 이화여자대학교 유치원·박물관·인문관·약학관, 데이콤중앙연구소, 삼보컴퓨터사옥, 홍길동민속공원 마스터플랜, SK인천교환사 등이 있습니다.
02-516-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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