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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 전원컬럼
글번호 88 (6174) 작성자 전우문화사 날짜 2003-10-28 조회수 3141
제 목 [전원일기] 가을꽃은 늦게 피는 것이 아니다

가을은 식물로부터 온다. 이것은 봄부터 가을까지 살면서 새롭게 느낀 또 하나의 사실이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왔다. 내가 살고 있는 양평뿐만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올여름은 지긋지긋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말복을 지나 처서를 넘겼어도 비는 멎지 않았고 간간이 비치는 햇살은 9월이 와도 따갑기만 했다. 마당에 이끼가 가득하고 봄부터 자라기 시작한 꽃나무들은 잎사귀만 무성하게 자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이 온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9월에 접어들자 노란 나뭇잎들이 마당과 길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때는 수북하게 쌓이는 날도 있었다. 우리 집 옆으로 비어 있는 집 마당에 있는 키 큰 태산목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한 잎 두 잎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 추석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제법 비치고 여름이 아쉬운 듯 매미는 더욱 요란하게 울어댔다.
가을이 온 것이다.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사람들은 낙엽이 떨어져도 가을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나무만이 제대로 가을을 맞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식물들의 가을맞이는 낙엽만이 아니었다.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나 풀들은 대부분 가을이면 잎이 물들거나 말라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유독 가을이 되면 잎이나 꽃대가 더욱 푸르러지고 무성해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곧 가을꽃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을꽃들을 우리 집에 들여온 것은 지난 봄에 이사 온 후 마당을 가꾸면서부터다. 물론 이사를 오기 전에 소나무, 목련, 살구나무, 앵두나무, 회화나무, 측백, 주목 등을 대충 제자리를 잡아 심었고, 그 후 모란, 작약, 장미 등을 심었다. 이렇게 먼저 들여온 꽃나무들은 덱 앞 자리에 자리를 잡아 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나와 아내는 그 꽃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차츰 꽃나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아내가 어느 날부터 이름 모를 식물들을 구해 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튤립, 칸나, 할미꽃, 한라구절초, 해국, 소국, 접시꽃, 붓꽃 등, 그 중 칸나는 키가 많이 자라기 때문에 울타리 삼아 마당 가장자리에 잘 어울렸다. 그 외 대부분은 마당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돌 틈이나 집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나나 아내는 서울에 사는 동안에는 줄곧 아파트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화단에 있는 꽃들을 그저 감상만 했던 게 사실이다. 그 이름이 무엇이며 언제 피는지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내도 꽃나무를 심고 가꾸는 동안 가끔 독백처럼 그런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을꽃이었다. 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꽃나무들은 우리 식구들이나 손님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초여름부터 지금까지도 몸이 약해서인지 가끔 꽃을 피워 올리는 장미는 각별한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들에 비해 가을에 꽃을 피운다는 한라구절초, 해국 그리고 소국 등은 8월까지만 해도 꽃망울은커녕 잎마저 누릇누릇한 빛으로 잘 자라지도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이들 가을꽃들은 맨드라미를 새로 들여오면서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심지어 봉숭아, 채송화 등에게도 밀려나 대문입구 돌 틈이나 후미진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운명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아내가 심은 가을꽃 중 앵두나무 밑에서 엉겅퀴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장마가 다 끝나가도 30센티미터도 되지 않게 자라 영 볼품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앵두나무 밑에서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말복이 지나 봄 꽃나무들은 잎새를 떨어뜨리기 시작하는데 반해 이 놈은 그때서야 잎이 더욱 무성해지고 키가 쑥쑥 자라 며칠 만에 1미터도 넘는 앵두나무 가지들을 치받고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이름도 없이 말이다.

봉숭아, 채송화에 밀려나 대문간에 다소곳이 있는 한라구절초나 돌 틈에 박혀 있는 해국은 그냥 그대로 아직 있는데, 유독 이 놈만이 갑자기 쑥쑥 자라는 것이 그대로 마음에 찰 수 없었다. 아직도 봉숭아는 줄곧 꽃을 매달고 있고, 채송화는 꽃을 피웠다가 지우고 또 피웠다 하는 것이 나의 눈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던 어느 날, 없는 집에 자란 처녀 같은 칸나가 너무 무성하여 그늘을 짙게 하는 바람에 잎을 솎아 주다가 문득 그 이름 모를 가을꽃에 눈길이 닿았다. 이제는 꽃봉오리까지 맺히는데 그 모양이 씀바귀 꽃망울처럼 가지 끝에 초롱초롱 맺힌 것이다. 순간 정말 이름 없는 들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봄과 여름에 걸쳐 아내는 이름 없는 들풀들을 가끔 화초 가꾸듯이 한데 모아놓곤 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잡초도 있고, 질경이나 씀바귀, 클로버 같은 들풀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놈도 이름 없는 들풀이겠거니 하고 그냥 뽑아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놈이 너무 자라는 바람에 늦게 새잎이 나온 앵두나무의 생명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생각해 온 터였다.

마침 아내가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오는 날 내 눈길이 그 놈에게 닿자마자 단숨에 휙 뽑아버렸다. 그리고는 그 놈들을 대문 밖 풀숲으로 던져 버렸다. 외출에서 돌아 온 아내는 이렇게 된 광경을 보자 무척 서운해 했다. 비록 다른 것에 비해 꽃을 늦게 피우고 또, 단순히 이름을 모른다고 뽑아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들꽃이 버려진 곳으로 가 그 자리에다 다시 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키가 커서 잘 세워지지 않는 그 놈들을 지지대를 가져 다 하나하나 묶어 주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에는 그 중 하나를 가져다가 원래 자리에다 심고는 물을 흠뻑 주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혹시 그 놈들이 말라 죽어버리진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추석이 지난 며칠 후 아침, 문득 눈에 띈 것은 하얀 솜사탕 같은 꽃이었다. 그 이름 없는 들풀이 꽃을 피운 것이었다. 제일 먼저 꽃봉오리를 맺은 맨 위에서부터 피는 꽃 모양은 그야말로 작은 솜사탕들이 저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하였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자 곧 민들레 홀씨처럼 사방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지금도 피고 있고, 식물도감에서도 그 이름을 찾을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을 민들레솜사탕 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들꽃이라고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고 가을꽃은 제때에 피는 것이지 결코 늦게 피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가르쳐 준 그 민들레솜사탕을 하얀 부끄러움으로 매일 바라본다. 田

■ 글 이기윤(시인·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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